무적해병의 진원지 도솔산

분류없음 2008/06/24 05:12

1.하늘의 우룃소리 땅위에 아우성 불바다 피투성이 세우기 몇 밤, 이 나라 해병들이 명예 걸메고 목숨내건 싸움터 도솔산일세

2.아침안개 사이로 햇살을 받으며 돌가루 먼지속에 그리던 간밤 땀투성이 얼굴을 들어볼 때엔 도솔산 고지고지 발아래 있네

3.돌 바위 벼랑에도 골짜기에도 손발의 피땀으로 아로 새겨진 해병대의 그 이름 가실리 없어 세상사람 일러라 도솔산싸움

후렴) 오! 오! 도솔산 높은 봉 해병대 쌓아올린 승리의 산  젊은 피 불길을 뽑는다.


이 노래는 6.25당시에 도솔산지구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해병들의 넋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다. 노랫말의 곳곳에서 해병대의 용맹스러움과 당시의 처참했던 전황을 말해주는 듯 하여 가슴이 뭉클해져옴을 느낀다.


우리가 말론만 듣던 도솔산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1951년 5월, 인민군의 춘계 공세를 격퇴한 직후,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양구군 해안면의 해안분지 남서쪽에 있는 전략요충지 도솔산(1,148m)을 확보하기 위해 6.4일부터 20일까지 벌인 전투로 도솔산과 인근 대우산으로 연결된 산악지역에 배치된 북괴군 12사단과 32사단의 정예부대를 치열한 공방전과 무수한 희생 끝에 격퇴하고 도솔산을 탈환함으로써 ‘무적해병’이라는 신화를 창조한 전투다. 이 전투에서 북괴군은 2,263명이 사살됐고, 우리 해병은 123명이 전사했으며 6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이 전투에 한국 해병대가 투입된 것은 1951년 6월4일, 도솔산 탈환에 실패한 미 해병대와 임무를 교대했기 때문인데, 미 해병대와 임무를 교대한 한국해병 1연대는 공격을 개시했으나 암석지대를 이용한 수류탄과 중화기로 무장한 적의 완강한 저항을 받고, 주간 공격을 야간공격으로 전환하여 결사적인 돌격작전을 감행하는 등 난공불락의 전지를 혈전 17일 동안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끈질긴 공격 끝에 6월20일, 24개 목표를 점령했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이승만대통령이 도솔산을 방문하여 ‘무적해병대’라 칭하면서 ‘무적 해병’칭호를 하사하였고, 해병 1연대에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했다. 한편 미 해병대 1사단장은 한국 해병대가 아니였다면이 전략적인 요충지를 수중에 넣지 못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도솔산지구 전투’는 6.25전쟁 시에 해병대가 벌인 ‘통영상륙작전’ ‘경인지구작전’ 도시작전인‘양도작전’ ‘김일성 모택동고지전투’등과 함께 5대 작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해병대의 용맹과 함께 우리 전사상에 길이 빛나는 승리의 금자탑이다.


하여 강원도와 해병대사령부,양구군,해병대전우회중앙회에서는 98년부터 도솔산지구전투 전몰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도솔산지구전투문화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금년에도 제11회 도솔산전적문화제를 6월20일부터 22일까지 양구 종합운동장에서 개최했다. 문화행사에는 해병대의 군악대 공연과 교통방송이 함께 하는 도솔가요제, 강원 유스뮤직.댄스 페스티벌, 국악경연 등의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해병대 전우회 시.도 연합회 축구.족구대회를 비롯하여 옛전우의 만남행사, 병영 음식 및 전쟁음식 먹어보기 체험 등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특히 6월21일, 15:00부터 약 1시간30분여에 걸쳐서 진행된 도솔산지구전투 전몰용사 추모제에는 당시의 참전용사들을 비롯하여 각 시도 해병대전우회, 다수의 미국 해병전우회 회원들이 참석했다.

추모제 행사가 진행 중에는 갑자기 안개가 끼고 비바람이 몰아쳐 간편한 여름 복장으로 참석했던 참석자들이 추위에 떨었는데, 당시 악천후속에서 목숨 걸고 싸웠던 해병들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6.25 58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20세 안팎의 꽃다운 나이에 사랑하는 부모를 뒤로 하고 전쟁터에 나가 장열하게 죽어갔던 당시의 젊은이들과 처자식들을 고향에 두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참가하여 나라를 지켰던 전몰장병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국가 안보는 한번 구멍이 뚫리게 되면 점점 커져 좀처럼 되돌려 막기가 쉽지 않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전몰장병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하면서, 다시는 이 땅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보태세를 강화해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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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에 있는 한국공원

분류없음 2008/06/18 21:34

터키의 국가 영웅인 ‘무스타파 까말 아타튀르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영묘에서 불과 몇백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한국공원이 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국공원에는 터키군의 한국전 참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터키를 관광하는 우리의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관광 코스의 하나다.


기념탑에는 “이 탑은 토이기군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한국전에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앙카라시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세워지게 된 이 탑은 토이기 공화국 건립 5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한국정부가 토이기국민에게 헙납하다. 1973년 10월29일”이라고 쓰여져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 참전 16개국의 일원으로 참전했던 터키는 전쟁기간 중에 3,064명의 전사상자를 냈으며, 이 가운데 741명이 전사했다. 한 번도 가보지도 못했던 나라와 한번도 만나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그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한국전에 참전하여 고귀한 목숨들을 잃은 것이다. 이 탑 주위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죽어간 전사자들의 성명과 주소, 부모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탑을 둘러본 관광객들의 마음은 숙연하게 하고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6.25당시 터키군의 활약상은 대단했다고 한다. 14C부터 18C에 이르는 전성기에 유럽을 비롯한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일대 40여개 국가를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의 용맹을 이어 받은 터키군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1개보병연대, 연병력 1만5천여명의 병력을 파견하여 1.4후퇴 때, 중공군의 남하를 3일동안이나 지연시키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기도 용인시 동백동(산16번지)에 터키군의 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매년 6월이 되면 국내의 수많은 사람들과  당시에 참전했던 터키의 노병들이 이곳을 찾아 전사한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당시를 회상한다.


기념비에는 “유엔군의 기치를 들고 터키 보병여단은 한국의 자유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침략자와 싸웠다. 여기 그들의 전사상자 3,064명의 고귀한 피의 값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라고 적혀 있다.
이와함께 여의도에는 앙카라시와 서울시와의 자매결연(71년8월)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앙카라 공원’을 조성하여 77년 5월 개원했다.


우리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6.25당시에 전사한 우리의 전몰 장병들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낯선 이역만리에서 장열하게 산화한 참전 16개국의 장병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터키의 제1의 도시인 이스탄불은 지리적으로 동양과 서양이 맞닿아 있고, 연간 2천여만에 달하는 관광객들이 유서 깊은 이 도시를 찾고 있다고 한다. 이스탄불은 비잔티움-로마-오스만 투르크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역사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이스탄불의 여러 지역을 통째로 문화유적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아타투르크 대교)


                              ( 6세기에 만들어진 성 소피아 성당)



                           (1616년경에 만들어진 슐탄 아흐멧 사원)


                          (이집트에서 가져다 놓았다는 오벨리스크)


                  (400여년가까이 슐탄가조들이 거주하던 톱 카프 궁전)


이러한 문화 유적들을 관광하기 위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물론, 우리의 관광객들도 이곳을 많이 찾고 있다. 예전엔 터키가 우리를 도왔고 이제는 우리의 관광객들이 터키를 돕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터키는 우리의 관광객들을 보기만 하면, ‘피를 나눈 형제국’임을 스스로 자인하면서 반갑게 맞이해준다. 터키의 젊은이들은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유행했던 ‘대한민국, 짜작 짜작’을 외치면서 친근감을 과시 한다.


터키는 인천 국제공항에서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까지 12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토록 먼나라에서 그들은 우리를 돕겠다고 1만5천여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을 파견하여 많은 희생자를 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은 누구 에게나 고귀하고 존엄하다. 관광객들은  터키여행을 하면서 이곳 저곳 유서 깊은 곳을 많이 관광하지만 관광객들의 가슴을 가장 찡하게 만든 곳은 앙카라의 한국공원에 세워져 있는 탑과 탑 주위에 세겨져 있는 전사자들의 이름과 주소, 부모들의 명단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나라사랑과 함께 우방에 대한 고마움을 되세기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이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터키는 고대의 유명한 유적지와 천혜의 지리적인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의 관광객들은 대체적으로 터키의 3대 유적지의 하나인 ‘에페소’를 방문하여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되었던 유물들을 관광하고, 새하얀 눈이 덮혀 있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석회봉과 노천온천, 고대의 거대한 원형극장이 남아있는 유적지 ‘히에라폴리스’ 등을 관광한다.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인 암굴괴석이 깔려있는 갑바도키아를 둘러보고,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지낸 이스테리안 지하도시 등을 관광하게 된다. 이같이 터키에는 유럽과 동양의 역사를 조망하고 자연문화유산을 관광할 수 있는 지역이 많은 유물 유적의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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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매년 식량난에 허덕인가

분류없음 2008/06/10 20:47

최근들어 북한의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부터 핵심계층이 거주하는 평양에서도 식량배급이 중단됐고, 전국 주요도시의 국가기관들에서도 제대로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장마당에서는 쌀 1Kg의 가격이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인 2,500원선을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이 어느 정도 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5일, 한국 농촌경제연구원 권태진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7월초까지 식량난이 심화될 수 있으며 8월 중순부터 가을 수확기까지 상황이 가장 심각할 것”으로 진단했다.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느 한해라도 좋아진 적이 없지만 금년에는 지난 90년대 후반 300여만 명의 아사자를 냈던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마저 들려오고 있어 우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은 금년도에 166만 톤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의 농촌진흥청과 세계식량계획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 한 해 동안에 필요한 평균 곡물 수요량은 640여만톤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북한이 연간 생산해낸 곡물은 380만 톤에서 400여만 톤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제아무리 농사가 풍년이 든다고 해도 200여만 톤 이상의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은 이 같은 부족한 식량을 2000년 ‘6.15공동선언’이후 우리로부터 거의 매년 지원받은 40-50만 톤의 식량과 국제사회의 지원(20여만톤),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비교적 값이 저렴한 곡물을 수입하여 일부를 충당했으며, 나머지는 주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견뎌왔다. 그러나 금년들어서는 국제 곡물가격의 폭등으로 수입이 중단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로부터의 지원마저 끊기고 있어 식량난이 더욱 더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인 식량난으로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주민들은 어린이들을 비롯한 노약자들로, 유엔 인권보고위의 보고('06,11)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의 12%정도가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어린이들의 영양실조가 42%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이 북한의 식량난이 해마다 거듭되고 있는 이유는 매년 홍수피해와 흉작이 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홍수피해를 입지 않고 풍년이 들었다고 해도 북한은 겨우 420-440여만 톤의 식량밖에 생산해 내지 못하고 있어 절대적으로 200여만 톤이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에서 곡물생산이 저조하고 주민들이 만성적인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것은

첫째
, 말로만 농업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른바 ‘선군정치’를 부르짖으면서 모든 역량을 군에 우선시함으로서 자연히 농업생산 향상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지원된 식량이 모니터링에도 불구하고 당 간부를 비롯한 정부 고위인사 등 특권계층에 우선 배분됨으로써 주민들에게 돌아갈 몫이 그만큼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생산 증대를 가로막고 있는 협동농장제와 60년대에 김일성이 주창했던 이른바 다락밭 개간과 밀식재배방식인 ‘주체농법’을 고수하면서 종자개량을 비롯한 선진 영농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있는 것도 식량난을 가중시키는 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농민이 농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국가나 협동농장이 농업의 주인이 되고 있어 생산량이 증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한가지 작목만을 계속 경작함으로써 토양이 산성화 되어 있는데다가 지나친 농지 개간과 남벌로 인해 산림이 황폐화되어 있어, 비가 조금만 내려도 홍수 피해를 입어 농작물의 피해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은 스스로 남한의 선진 영농기술을 도입하여 생산량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남한과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원에만 의존하려는 타성에 젖어 있는 것도 북한의 식량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난에서 벗어나가 위해서는 말로만 ‘먹는문제의 해결’을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굳은 자세를 가져한다. 이와함께 시대착오적인 ‘선군정치’를 폐지하고,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 등 군비증강에 쏟아 붓고 있는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소하고 생산성을 증대시키는데 사용토록 해야 한다.


‘선군정치’가 북한에서 없어지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먹는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고 주민들을 농업생산 증대에 몰아넣는다 해도 생산성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며, 주민들에 대한 핍박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고 있는 원흉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고 김정일 유일지배체제 유지를 위해 부르짖고 있는 ‘선군정치’라는 것을 명심하고 북한은 선군정치를 즉각 폐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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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시 나그네 2008/06/16 08:17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아래 링크에 식량난에 대한 분석이 잘 되어있네요.. 참조하세요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500&num=56948

  2. 다시 나그네 2008/06/16 08:24 PERMALINKMODIFY/DELETE REPLY

    아래 링크에 식량난에 대한 분석이 잘 되어있네요.. 참조하세요
    http://www.dailynk.com/korean/read.php?cataId=nk00500&num=56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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